
202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는 현대판 신데렐라 서사를 전복시키는 강렬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날것의 에너지로 가득 찬 이 작품은 계급과 욕망의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동화의 시작과 파국
영화 ‘아노라'(Anora)는 2024년 개봉한 션 베이커 감독의 작품으로, 배우 마이키 매디슨과 마르크 에이델시테인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장르는 블랙 코미디, 드라마, 스릴러가 혼합되어 있으며 러닝타임은 139분입니다. 영화는 뉴욕 브루클린의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아니(마이키 매디슨)의 삶을 따라갑니다. 그녀는 러시아 재벌의 아들인 이반(마르크 에이델시테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사랑에 빠져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동화 같은 신분 상승을 이룬 듯 보였던 순간도 잠시, 이반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모든 것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치닫기 시작합니다. 영화는 이 지점부터 달콤한 로맨스물의 외피를 벗어 던지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스릴러로 돌변했습니다.
션 베이커의 시선, 날것의 연출과 에너지
션 베이커 감독은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 등 전작들을 통해 사회의 주변부 인물들을 꾸준히 조명해왔습니다. ‘아노라’ 역시 이러한 감독의 세계관을 계승하지만, 연출 방식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감독 특유의 핸드헬드 촬영 기법과 빠른 호흡의 편집은 극의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특히 주인공 아니의 감정선을 폭발적으로 연기한 마이키 매디슨의 열연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동정과 연민을 넘어선,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한 인간의 강인한 생명력을 체감하게 합니다. 이는 보다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비교했을 때, ‘아노라’가 훨씬 더 장르적 쾌감과 직접적인 에너지를 추구하는 작품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신데렐라 서사의 전복과 계급의 민낯
‘아노라’는 ‘귀여운 여인’과 같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의 구조를 차용하지만, 그 결말과 메시지는 정반대의 지점을 향합니다. 영화는 낭만적인 사랑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환상을 가차 없이 파괴합니다. 아니와 이반의 관계는 순수한 사랑이라기보다는, 현실 도피와 경제적 욕망이 뒤섞인 거래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이반의 부모가 보낸 해결사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유린하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아니는 수동적인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맞서 싸웁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계급의 벽이 얼마나 견고한지,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투쟁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맺음말
‘아노라’는 202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션 베이커 감독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브루클린의 스트리퍼가 러시아 재벌의 아들과 결혼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이 영화는, 마이키 매디슨의 폭발적인 연기와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통해 장르적 쾌감을 선사합니다. 동시에 신데렐라 서사를 전복시키며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계급 문제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단순한 오락 영화를 넘어, 강렬한 에너지와 시의적인 메시지로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