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호출산제 시행 1년, 성과와 남겨진 과제들
보호출산제가 시행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2025년 현재, 과연 이 제도는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임산부와 아기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이 되었을까요? 베이비박스 유기 감소라는 성과 뒤에 숨겨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남은 과제들을 면밀히 짚어봅니다.
위기임산부 지원 배경
지난 2023년 발생한 ‘수원 영아 사망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2024년 7월 19일, 출생통보제와 함께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경제적 빈곤이나 사회적 편견 등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키우기 힘든 임산부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이 제도는 임산부가 신원을 밝히지 않고 의료기관에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동시에 태어난 아동은 국가의 공적 보호 체계 안에서 자라날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단순히 출산만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산전 검진부터 출산,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가명 출산 현황 분석
제도 시행 이후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보건복지부의 최신 통계 자료를 통해 구체적인 수치를 살펴보겠습니다.
시행 초기 6개월 동안의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 상담 건수: 총 901명의 위기임산부가 도움을 요청하며 3,176건의 상담이 이루어졌습니다.
- 가명 출산: 상담을 받은 인원 중 52명이 의료기관에서 가명으로 출산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시행 1년이 지난 2025년 7월 기준 통계는 더욱 유의미한 데이터를 보여줍니다.
- 심층 상담: 약 340명의 임산부가 제도를 통해 심도 있는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 제도 이용: 이 중 109명이 보호출산제를 통해 아이를 낳았습니다.
- 직접 양육: 상담 후 마음을 바꿔 직접 양육을 선택한 경우도 171명에 달했습니다.
이는 제도가 단순히 아이를 맡기는 창구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상담을 통해 임산부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베이비박스와 유기 감소
보호출산제 도입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영아 유기를 막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도 시행 이후 긍정적인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 수의 감소입니다.
과거에는 신분 노출을 꺼리는 임산부들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베이비박스를 찾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가명으로 출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병원 밖에서 위험하게 출산하거나 아이를 유기하는 사례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긍정적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지원책을 확대했습니다.
- 긴급보호비 신설: 올해부터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을 위해 후견인에게 3개월간 월 100만 원을 지원합니다.
- 의료비 지원: 산전 검진 및 출산에 소요되는 의료비를 전액 국비로 지원하여 경제적 부담을 덜어줍니다.
이러한 지원은 위기임산부가 안전한 의료 환경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이 되고 있습니다.
아동의 알 권리 논쟁
하지만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굵직한 과제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가장 뜨거운 감자는 바로 태어난 아동의 알 권리 문제입니다.
현행법상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성인이 된 후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단서 조항이 붙습니다.
바로 생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인적 사항을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 만약 생모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신의 뿌리를 평생 찾을 수 없습니다.
- 이는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도 아동이 부모를 알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만큼, 산모의 익명성 보장과 아동의 알 권리 사이에서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것이 시급합니다.
숙려 기간과 제도 홍보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출산 후 숙려 기간의 부족이 꼽힙니다.
현재 제도는 출산 후 아이를 직접 키울지, 보호출산으로 맡길지 결정하는 기간을 일주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출산 직후의 산모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평생을 좌우할 양육 여부를 결정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또한, 홍보 부족 역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아직도 많은 위기임산부가 이러한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상담 전화 ‘1308’이 운영되고 있지만, 접근성을 더 높여야 합니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 제도를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통합 돌봄 체계 구축
일각에서는 보호출산제가 양육 포기를 부추기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합니다. 특히 장애가 있거나 질병이 있는 아동을 합법적으로 유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제도의 방향성이 명확해야 합니다.
단순히 아이를 낳아서 맡기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임신 초기부터 출산, 그리고 그 이후의 삶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통합 돌봄 체계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 출산 이후 산모가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자립을 지원해야 합니다.
- 아동이 위탁 가정이나 시설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합니다.
제도 시행 1년, 우리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제는 양적인 성과에 만족하기보다,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야 할 때입니다. 위기임산부와 아동 모두를 보호하는 든든한 사회적 울타리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