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야쿠쇼 코지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와 섬세한 연출이 만나 평범한 순간들을 특별한 예술로 승화시키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과 사색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영화의 기본 정보 및 줄거리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2023년에 제작되어 국내에서는 2024년에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작품입니다. 장르는 드라마이며, 125분의 러닝타임 동안 주인공 히라야마의 며칠을 담담하게 따라갑니다. 일본의 거장 배우 야쿠쇼 코지가 주인공 히라야마 역을 맡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합니다. 도쿄 시부야의 공중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의 지극히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그려냅니다. 그는 매일 새벽녘에 일어나 식물에 물을 주고,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로 팝송을 들으며 일터로 향합니다. 정성스럽게 화장실을 청소하고, 점심에는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즉 ‘코모레비(木漏れ日)’를 필름 카메라에 담습니다. 퇴근 후에는 목욕탕에 들러 피로를 풀고, 저렴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습니다. 이러한 일상이 며칠간 반복되며, 그 과정에서 스쳐 가는 작은 인연들과의 교감이 잔잔하게 그려집니다.
‘코모레비’와 지금 이 순간의 가치
<퍼펙트 데이즈>의 핵심 주제는 ‘지금, 여기’를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그 안에서 발견하는 행복의 가치입니다. 영화는 ‘코모레비’라는 일본어 단어를 핵심적인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세상에 똑같은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은유합니다. 히라야마는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나뭇잎을 촬영하지만, 그 순간의 빛과 그림자는 매번 다릅니다. 이는 그의 삶을 대변합니다. 비록 그의 일상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그 안에서 매일 새로운 아름다움과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며 충만함을 느낍니다. 영화는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변화만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사소한 순간들에 집중하고 그것을 온전히 누릴 때, 비로소 완벽한 날들(Perfect Days)이 완성될 수 있음을 히라야마의 삶을 통해 조용히 역설합니다.
침묵의 언어, 야쿠쇼 코지의 연기와 빔 벤더스의 연출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는 대사를 최소화하고 배우의 표정과 행동, 그리고 영상미를 통해 감정과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야쿠쇼 코지는 거의 말이 없는 주인공 히라야마를 연기하며, 눈빛과 미소, 작은 몸짓만으로 캐릭터의 내면세계를 완벽하게 표현해냈습니다. 그의 연기는 침묵이 때로는 수많은 대사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연출 또한 절제미가 돋보입니다. 감독은 히라야마의 삶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묵묵히 따라갑니다. 4:3의 화면 비율은 인물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며,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영상미는 히라야마가 사랑하는 카세트테이프, 필름 카메라, 오래된 책과 조화를 이루며 영화 전체의 정서를 구축합니다. 특히 루 리드, 패티 스미스 등 1960~70년대 록 음악으로 채워진 사운드트랙은 히라야마의 감정을 대변하는 또 다른 언어로서 기능하며 영화의 품격을 한층 높였습니다.
다른 영화와의 비교 및 차별점
빔 벤더스 감독은 <파리, 텍사스>나 <베를린 천사의 시>와 같은 로드 무비를 통해 고독한 인물의 여정을 그려온 감독입니다. <퍼펙트 데이즈> 역시 고독한 개인의 삶을 다룬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들과 궤를 같이하지만,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아닌 한곳에 정착하여 자신만의 루틴 속에서 만족을 찾는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또한, 유사한 ‘슬로우 시네마’ 장르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퍼펙트 데이즈>의 차별점은 명확합니다. 많은 영화가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하지만, 종종 교훈적인 메시지를 강요하거나 현실을 낭만적으로만 포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히라야마의 노동을 신성하게 그리면서도 그 고됨을 외면하지 않으며, 그의 과거를 암시하는 몇몇 장면을 통해 그가 선택한 현재의 삶이 결코 단순한 도피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예술적 성찰을 잃지 않는 균형 감각이 이 영화를 독보적인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맺음말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 평범함 속에 깃든 삶의 아름다움을 성찰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야쿠쇼 코지의 경이로운 연기와 빔 벤더스 감독의 절제된 연출, 그리고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져 한 편의 시와 같은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특별한 사건 없이도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하루가 ‘완벽한 날’이 될 수 있다는 깊은 위로와 통찰을 전하며,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수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